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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레이마니 암살 이유는? 이란의 정신적 지도자!

카셈 솔라마니는 1957년 3월 11일 이란의 케르만 주에서 출생했다. 2020년 1월 3일 미국의 코셈 솔레이마니 암살 프로젝트에 의해 MQ-9 리퍼라는 무인 암살 드론에 저격 당해 살해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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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이란 이슬람 혁명 수비대에 1979년부터 군생활을 시작해서 2020년 미국의 암살을 당하며 생을 마감했다. 군 계급은 소장이었으며, 이란의 아버지라는 호칭을 받을만큼 대중에게 인기가 좋아 추후 대통령 후보로 거론되기까지 했던 인물이다.

 

카셈 솔레이마니

지난 금요일 바그다드 국제공항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명령한 공습으로 사망한 카셈 솔레이마니는 이란에서 용감하고 카리스마적이며, 군인들의 사랑을 받는 영웅으로 칭송받았다.

 

알리 하메네이

이란의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는 한때 그를 '혁명의 살아있는 순교자'라고 불렀다. 그러나 미국은 이란의 최고 장군을 무자비한 살인자로 간주했다.
이란의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중 한 명인 솔레이마니는 매우 논란이 많은 인물이었다. 그는 이란의 해외 작전을 다루는 엘리트 부대인 혁명수비대의 쿠즈 포스의 우두머리였으며, 미국에 의해 외국 테러조직으로 간주되는 부대의 우두머리이기도 했다.
1980년대 초 이란-이라크 전쟁에서 최전방 군인 생활을 시작한 솔레이마니는 이란에서 없어서는 안 될 인물이 되어 중동에서 영향력을 확산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군대 내에서 솔라이마니는?
그는 평생을 전투에 임해 왔다. 병사들은 그를 사랑한다. 국가안보, 정보 및 테러 분석가인 마크 허틀링 중장은 "그는 조용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남자로 전략적인 천재이자 전술적인 운영자"라고 말했다.


미 국방부는 솔레이마니와 그의 부대가 "수 백명의 미군과 연합군 병사들의 죽음과 수천명의 부상자의 책임을 지고 있다"고 밝혔다.

이런 혁명 수비대


1998년부터 이란 혁명 수비대를 이끌었던 솔레이마니는 이란의 ‘그림자 지휘관’으로 알려진 이라크와 시리아에서 이란의 군사작전을 지휘했다. 미국 정부는 이라크 전쟁 동안 이라크 저항세력의 무장세력에 무장 지원 및 특수 제작된 폭탄을 제공한 것을 솔레이마니 부대의 소행이라고 믿고 있으나, 이란은 이를 부인했다.

 

소레이마니는 IS와의 전쟁에서도 이라크의 전장에 자주 출몰해 시리아군이 극단주의 무장세력과 싸우는 것을 도왔던 것이 보도되기도 했다. 솔레이마니는 중동 전쟁을 넘어서는 대혼란을 일으켰다.

 

미국 재부무

미국 재무부 관리들은 솔레이마니가 2011년 워싱턴의 밀라노에서 사우디 아라비아 대사를 암살하려다 실패한 쿠즈 포스 장교들을 감독하면서, 미국에 대한 악명 높은 음모에 연루되었다고 말했다.

미국 국방부

국방부는 금요일 성명에서 "솔레이마니는 이라크 전역과 이라크 전역의 미국 외교관과 요원들을 공격하기 위한 계획을 적극적으로 수립하고 있다"고 밝혔다."